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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크라스노다르(1) - 라 쓰고 소치라고 읽는다 : 잠깐의 일탈 크라스노다르에 온 것도 잠시, 열차를 타고 4시간 정도 가면 소치에 다녀올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흑해 연안의 도로가 상당히 구불구불한지라 버스로 가면 야간버스에 7시간 이상 걸리니, 무조건 철도가 답이었다.) 사실 바로 다녀온 이유는 날씨 때문. 내가 크라스노다르에 도착한 날은 맑았지만 그 다음은 흐리고 비까지 온댔다. 그래도 날씨가 덜 나쁠 때 한 번 다녀와보기로 하고 열차표까지 예매했다. 다만, 소치 당일치기는 그닥 추천하고 싶지 않다. 왕복 8시간의 일정을 소화하려면 새벽에 나서야 하거니와 열차 좌석도 그닥 편하지 않아 오래 앉아서 가기 힘들다. (실제로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다.) 내가 탔던 열차는 '라스토치카(Ласточка)'라는 등급의 열차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똑같은 라스토치..
#47. 13번째 이동 - 볼고그라드 → 크라스노다르 (453Й 열차) 수 없이 많은 이동을 해왔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동하는 내용이다. 이것도 엄연히 여행의 일부이거니와 도시를 옮긴다는 의미에서 계속 기록을 해야 될 것 같다. 볼고그라드역 역시 나름대로 국제열차가 오가는 역이다. 매주 일요일에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가는 열차가, 매주 화, 일에는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는 열차가, 심지어 타슈켄트로 가는 열차도 수시로 있다. 괜히 수운, 철도의 환적지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게 역사도 상당히 크다. 누가 보면 흰색 궁전이라고 할 듯.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니 날씨가 많이 따뜻해진다. 모스크바는 점점 추워지던데 이대로 가면 적응할 순 있으려나 싶다. 아니나 다를까, 크라스노다르 역에 도착하니 햇살이 따갑다. 기온이 심지어 20도 중반. 반팔만 입고 다녀도 충분하리..
#46. 볼고그라드(2) - 메트로트람 타고 시내 나들이 볼고그라드에는 메트로트람라는 특이한 교통수단이 있다. 트람이라고 하면 도로 위를 지나는 전철 같은 느낌이 있는데, 메트로트람은 아예 선로를 따로 가지고 있을 뿐더러, 생긴 건 분명히 트램이 맞는데, 트램이 지하로 들어가 지하철처럼 운행한다. 다만, 노선은 단 하나(지선이 있긴 하다.) 또한 지상에서 탈 때는 버스를 타듯 타면 되는데, 지하로 들어가 탈 때는 매표소가 있다. 지하철과 트램을 섞은 느낌이다. 메트로트람은 참전용사 기념관, 레닌 광장, 콤소몰스카야 광장까지 볼고그라드의 주요 지점을 연결해준다. 트램이 지하로 들어올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니까. 그리고 볼고그라드로 오면서 거친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던 광경이니까. 최근에 군생활을 끝내서인지, 우리나..
#45. 볼고그라드(1) - 스탈린그라드 전투 수훈의 영웅 도시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 도시 중에는 '영웅 도시(Герой-город)'가 있다. 영웅 도시는 대조국전쟁(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 기간) 당시 수훈했거나 특기할 공훈이 있는 도시에 내린 칭호다. 이 중 일부 도시는 이를 영광으로 생각해 시 문장이나 시기(市旗)에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새겨 넣기도 했다. 볼고그라드 시 문장의 윗 부분에 영웅 도시임을 나타내는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그려넣었다. 볼고그라드는 바로 독소전쟁의 전환기를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현장이었다. 소련군과 추축군 도합 200여 만 명이 죽어나갔을 만큼 양측 모두 많은 피를 흘렸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현장, 소련 입장에서는 독소전쟁의 전환기를 마련하고 추축국의 공세를 막아내고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던 현장..
#44. 12번째 이동 - 카잔 → 볼고그라드 (045Е 열차) 이번 이동부터 보통의 시베리아 횡단 루트와 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통 시베리아 횡단을 한다고 하면 니즈니 노브고로드로 바로 간 다음 모스크바로 가거나, 시간상 중간 경유 없이 바로 모스크바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내 계획은 달랐다. 기왕 하는 러시아 횡단, 한 번 흑해 앞까지 갔다가 치고 올라가보잔 생각에 카잔에서 볼고그라드를 거쳐 크라스노다르, 로스토프-나-도누로 가보기로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이미 로스토프-나-도누에 도착한 상태. 다들 이 루트를 들었을 때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지금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다. 크라스노다르보다는 바로 소치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 다만 지금의 착오가 나중의 자양분이 되리란 것은 부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날씨..
#43. 카잔(2) - 레닌의 도시 / 바우만 거리 카잔은 레닌이 학창시절을 보낸 도시다. 레닌은 1887년 카잔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불법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되었는데, 레닌이 집회의 주동자가 아니었음에도 제적된 이유가 있었다. 레닌의 맏형인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는 알렉산드르 3세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처형된 전적으로 인해, 레닌이 맑시즘, 혁명주의 등에 탐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카잔 대학에서는 레닌의 복학을 거부했다. 이후 레닌은 페트로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과에 청강생으로 들어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카잔은 이러나 저러나 레닌의 학창 시절을 함께한 도시다. 다만, 실제로 레닌의 본명을 딴 도시는 카잔 근처의 울리야놉스크라는 도시다. 레닌의 본명이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Влади́мир..
#42. 카잔(1) - 살다살다 경찰 조서를 다 쓰네 / 카잔 크례믈 카잔에 도착해 숙소 체크인을 하고 긴장이 풀리기도 해 방에 외투를 걸어두고 낮잠을 2시간 잤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러 나가며 지갑을 보니 18,000루블이 없어졌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인출한 5,000루블 지폐들이 하나도 없고 1,000루블 지폐도 가져갔다. 잠시 긴장을 푼 사이에 대놓고 지갑에서 현금만 빼갔다. 소매치기는 없었는데 도둑이 있을 줄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 카드와 여권은 쓸모가 없다 생각했는지 멀쩡히 남아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카드와 여권마저 없어졌으면 여행이고 뭐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부터 하고 모스크바로 당장 가야 했다. (카잔에서 제일 가까운 해외공관이 주 러시아연방 대한민국 대사관이다.) 대담한 자식 같으니. 잠깐 잠든 사이에 그걸 훔쳐갈 줄은 상상도 안 했다. 여담으로..
#41. 11번째 이동 - 예카테린부르크 → 카잔 (335Е 열차) 이젠 열차도 상당히 많이 타서 익숙해질 지경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여러 도시에 머물다 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탄다는 특정 열차를 되려 타지 않게 되면서, 더 다양한 열차를 타 볼 수 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이 열차도 그렇다. 시베리아 횡단 연선이 아니라 노보로시스크(흑해 함대의 본부가 있는 곳)로 빠지는 열차다. 열차를 타다 보면 요즘은 하단에 콘센트, 상단에 USB 포트가 있는 경우가 많다. 노트북을 쓸 게 아니라면 USB 포트만 있어도 여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 (다만 완전한 구형 객차라 둘 다 없을 경우에는 보조배터리가 있어야만 할지도.) 열번이 001에 가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열차를 잡은 것 같다. 저번에도 쓴 것 같은데, 열번이 낮다고 해서 꼭 설비가 나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