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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유람기/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19. 8. 2 ~ '20.1.28)

#48. 크라스노다르(1) - 라 쓰고 소치라고 읽는다 : 잠깐의 일탈

크라스노다르에 온 것도 잠시, 열차를 타고 4시간 정도 가면 소치에 다녀올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흑해 연안의 도로가 상당히 구불구불한지라 버스로 가면 야간버스에 7시간 이상 걸리니, 무조건 철도가 답이었다.)

사실 바로 다녀온 이유는 날씨 때문. 내가 크라스노다르에 도착한 날은 맑았지만 그 다음은 흐리고 비까지 온댔다.

그래도 날씨가 덜 나쁠 때 한 번 다녀와보기로 하고 열차표까지 예매했다.

다만, 소치 당일치기는 그닥 추천하고 싶지 않다. 왕복 8시간의 일정을 소화하려면 새벽에 나서야 하거니와

열차 좌석도 그닥 편하지 않아 오래 앉아서 가기 힘들다. (실제로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다.)

내가 탔던 열차는 '라스토치카(Ласточка)'라는 등급의 열차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똑같은 라스토치카여도 다니는 노선마다 객실 내부 구성이 좀 다른 것 같았다.

크라스노다르에서 소치로 향하는 열차의 좌석은 리클라이닝도 안 되고, 등받침도 상당히 딱딱했다.

(1~2시간이라면 타겠지만 4시간은 무리다. 차라리 침대칸을 예약해서 1시간 가량 더 걸려도 그냥 마음 편하게 가길.)

 

소치 역에 도착한 라스토치카 열차. 소치 역이 종착은 아니고, 소치의 동부인 아들레르 방면까지 간다.

 

사진에도 어렴풋이 드러나지만, 소치로 오니 도시의 분위기가 확 다르다.

벌써 겨울이 왔나 싶던 카잔과 볼고그라드의 찬바람과는 그 궤가 다르다.

훈풍이 불어오는 줄만 알았더니 어느 새 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반팔 입고 와도 됐다 싶을 만큼 따뜻했다.

(다만 외투는 챙겨야 한다. 비가 온다던가 돌아왔을 때 쌀쌀할 수 있으니.)

 

길 건너에서 찍은 소치 기차역. 규모가 상당히 크다. 바로 앞에서 보면 규모에 압도당할 정도.

 

볼고그라드부터 흑해 방면으로 내려오면서 느낀 것인데, 역사마다 높은 첨탑이 하나씩 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볼고그라드와 크라스노다르 역사가 투박하다면, 소치 역은 좀 더 화려한 모습이다.

 

길 건너 멀리 야자수가 보인다. 여기 러시아 맞지?

워낙 국토가 넓은지라 러시아 안에서 볼 수 있는 기후는 천차만별이다. 북극의 무르만스크부터 시작해 혹한의 시베리아, 여기와 정반대인 흑해 연안의 도시들까지. 말 그대로 'Amazing'이다.

 

소치의 항구에서. 한편에는 요트가 엄청 많았다.

만약 터키로 가는 페리를 탈 경우에는 여기가 아니라 아들레르에 있는 소치 여객터미널을 찾아가야 한다.

아들레르는 소치 시내로부터 약 30여 km 떨어져 있다. (생각보다 상당히 멈.)

여튼,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여서인지 여전히 올림픽 개최 당시 세운 조형물들이 없지 않았다.

 

소치 올림픽이 벌써 5년 전이다. 이 때는 대학생이었지...

 

사실 소치에 올 때는 뭘 할 지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았는데, 하나 떠오른 것이 스탈린의 다차 중 하나가 여기 남아있단

이야기를 듣고 가보기로 했다. (소치 시내에서 절대 걸어갈 생각하지 말 것! 엄청 멀다.)

스탈린의 다차 출입구까지 가는 버스는 시내에서 탈 수 있는데, 버스요금은 거리에 따라 다르니 버스에 타서 거리표를 보거나, 정 모르겠으면 기사님께 'Дача Сталина!(다차 스딸리나!)'라고 외치면 알아서 정산해주실 것이다.

소치 역에서 105, 105C, 125П, 125C, 50, 88번을 타고 'Гостиница Зеленая Роща(젤레나야 로시차 호텔)'에 내리면 된다.

다만, 이 정류장에 내려서 1.3km의 오르막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 점 유의!

정류장에 내려서 호텔 출입구로 들어가면 된다. 길이 호텔 출입구라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싶겠지만 가는 길이 맞다.

 

이 표시 보고 잘 걸어가면 된다. 힘든 건 다음 이야기.
오르막길을 오르며 돌고 돌아가면 다차 로비가 나온다.

스탈린 다차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입장권은 300루블인데, 주의할 점이 있다.

스탈린 다차에서는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 시간별로 내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동행하는 방식으로 관람한다. 즉, 시간에 맞춰 가야 손해보지 않는다. 러시아어를 잘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진 않으니 장소들을 눈으로 보면서 여긴
이런 곳인가보다 하는 느낌을 받으면 될 듯.

단 하나 분명한 게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쉬기에는 이만한 곳은 없다는 생각은 들더라.

아래는 별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

 

집무실로 쓰인 방.
집무실 한 켠에 있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초상화. 스탈린은 중-소 간 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을까.
스탈린의 당구대. 지금 써도 될 만큼 상태가 좋다.
다차 안에 있는 수영장.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다차. 밖에서는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다차에 스탈린만 온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의 측근들도 이따금씩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행한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말년에 동행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한다.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하는 스탈린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더욱 몸을 사려야 했으며, 스탈린의 주재 하에 열리는 만찬은 그들에게는 불편한 파티였을 것이다.

 

생각보다 다차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 다차를 나섰을 때의 시간이 오후 4시 쯤 되었다.

사실 시간이 조금 더 허락했다면 아들레르에 있는 올림픽 파크까지 다 보고 올 예정이었는데, 아들레르로 가다 상상을 초월하는 교통체증에 항복하고 말았다. 올림픽 파크까지 가는 시간이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나올 정도.

정작 열차 출발 시간은 오후 6시 2분인데... 아차 싶었다. 시간 관리에 실패한 것 아닌가.

 

흔한_러시아의_교통체증.jpg... 시내 도로가 왕복 3차선이다. 이러니 안 밀릴 수가 없지...

심지어 소치 역에서 타기로 한 열차도 못 탈 것 같아 급하게 택시를 불러 아들레르 역에서 아들레르 - 소치 간의

추가 티켓을 끊고 급하게 탔다. (심지어 타고 3초 뒤에 문 닫혀서 뒤에 뛰어오던 다른 사람은 열차에 오르지도 못 했다.)

어찌 됐든 크라스노다르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들레르 역. 소치 올림픽 유치와 함께 새로이 단장한 듯.

그렇게 다시 라스토치카를 타고 크라스노다르로 돌아왔다. 한 번 타서 이제는 적응이 된 건... 무슨...

내리고 나니 허리가 욱신욱신. 그냥 시간 좀 더 걸려도 침대열차 티켓을 구할 것을 싶었다.

그런데 크라스노다르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비까지 올 줄이야. 외투를 챙겨간 게 전화위복이 됐다.

그런데... 역 앞은 차들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됐다. 다행히 숙소 바로 앞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끊기지 않아

두 번째로 쓸 뻔한 택시비는 아낄 수 있었다.

 

밤 11시의 크라스노다르 역. 혼돈의 현장이다.

 

소치, 나중에 휴양 삼아서 제대로 와보고 싶은 도시라 생각할 만큼 하루만 잡은 게 아쉬웠다..

하나 배운 만큼 나중에 자양분이 되겠...지?

 

2019. 10. 5

Written by Kon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