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4번째 이동 - 블라고베셴스크 → 치타 (391Ч 열차) 블라고베셴스크에 있을 때 날씨가 그닥 좋지 않았다. 도착한 날을 빼면 계속 흐렸고 출발하는 16일에도 비가 많이 내렸다. 실제로 블라고베셴스크에 있던 때 러시아 연방 정부에서 문자를 하나 받았다. (МТС 심카드를 쓰고 있으니 러시아 정부 문자도 받게 된다.) МЧС는 우리나라로 치면 재난, 응급상황을 총괄하는 러시아 연방 정부 부처다. 여기서 보낸 것을 보니, 대충 요약하면 '8월 17일, 강한 장맛비와 천둥이 치고 바람이 초속 15~20m로 불 수 있음.' 예????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어 러시아어를 공부하시는 형님께 보여드렸더니 사실이란다.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여길 떠나야겠다 싶어 예정대로 16일에 열차를 타고 치타(чита)로 이동. 블라고베셴스크라는 도시에 한국인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열차.. #15. 블라고베셴스크 - 아무르 강만 넘어가면 바로 중국이다? 처음 이 도시에 도착해서 곰곰이 생각하기를, '아무 정보도 없는 이 곳에 왔다. 여기서 뭘 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했다. 헌데 '꼭' 뭘 한다기보단 그냥 '이 도시는 이런 도시구나'하는 느낌을 갖는 것도 좋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물론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좋고! 미리 알아본 정보는 단 하나. 중국 헤이허(黑河) 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 만약 하바롭스크에 중국 총영사관이 있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으면 하바롭스크에 있는 동안 중국 비자를 받아 강 건너 헤이허에 다녀와볼 수 있었을지도. 중국 땅을 못 밟아봤다는 아쉬움을 달래며 아무르 강변 공원엘 다녀왔다. 이 작은 도시에 무슨 볼거리가 더 있냐고 한다면, 블라고베셴스크에는 아무르 주립 박물관이 있다. 1층에는 아무르 주의 생태 관련 전시와 중세.. #14. 3번째 이동 - 하바롭스크 → 블라고베셴스크 (035Э 열차) 뭔가 이상하다. 다시 봐도 뭔가 이상하다. 시베리아 횡단이라면 하바롭스크에서 바로 이르쿠츠크나 치타로 치고 올라가는 게 보통인데, 무슨 생각인지 블라고베셴스크라는, 잘 들어보지 못한 도시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지만) 했다. 블라고베셴스크는 국경도시다. 아무르 강을 두고 중국과 맞닿은, 하천 국경을 가진 도시다. 그래서 블라고베셴스크 역시 소련 해체 직전까지 비밀도시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시 중심가에도 중국인이 많고, 아직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찾기가 힘들다. 규모도 큰 편은 아닌 듯. 블라고베셴스크는 하바롭스크에서 매일 오후 18시 40분에 출발하는 035Э 열차를 타고 13시간 45분 이동하면 도착한다.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없다. 늘 그렇지만 열차 안의 사진은 거의 없다. 찍기도 눈치가.. #13. 하바롭스크 - 아름다운 도시 안에서 찾은, 의외의 흔적 하바롭스크는 하바롭스크 크라이(州)의 중심지로, 극동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블라디보스토크가 푸틴 대통령에 의해 많이 성장하고 있어 극동지역의 중심지를 내준 느낌이지만, 이래 보나 저래 보나 극동 지역에서 1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도시다. 하바롭스크에서 둘러볼 주요 지역은 모두 시가지 안에 있어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다. 다만, 블라디보스토크처럼 사람이 북적하지도 않고 동유럽의 색채가 더 많이 묻어나는 도시인지라, 너무 많은 사람에 치여 블라디보스토크가 싫다면 하바롭스크 방문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물가도 좀 더 싸다. 다만 시가지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지라, 너무 오래 머무르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나는 하바롭스크에서 4일 머.. #12. 2번째 이동 - 우수리스크 → 하바롭스크 (005Э 열차) 라즈돌노예 역까지 다녀와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첫 열차는 쿠페 상단인데... 남긴 사진이 없다. 그나마 휴대전화에 있는 이 사진이 전부. 우수리스크에서 22:55에 출발, 꼬박 9시간 반을 달려 하바롭스크역에 도착한 것이 8시 반. 도착은 했는데, 일찍 일어난 터라 몸이 노곤해 바로 숙소로 간다. 다행히 숙소 근처까지 트램으로 이동할 수 있어 택시기사들의 호객을 물리치고 트램을 타러 갔다. 트램 1회 탑승시 요금은 25루블. 역시 대중교통 운임이 착하다. 환승이 되지 않는 것만 빼면... 트램 노선은 1번 노선부터 6번 노선까지 있는 것 같은데, 1번 노선이 자주 다니고 노선에 따라 배차 시간이 들쭉날쭉. 어찌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물론 이 이후로 비가 올 줄은 몰랐지만. 이번에.. #11. 우수리스크 (3) - 연해주에 깃든 한인의 흔적 ③ 마지막으로, 라즈돌노예 역(Раздольное)을 다녀오기로 했다. 라즈돌노예 역은 평범한 간이역 같지만,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당시 고려인의 집결지였다. 지금은 역무원도 없는 간이역이지만 내가 이 곳을 찾았을 때 비바람이 매서웠다. 그 때의 일을 기억하라는 외침이었을까. 18시에 라즈돌노예 역으로 가는 열차가 있어 표를 미리 끊었다. 왕복 130루블. 열차를 타고 45분 동안 이동하니 금세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나를 포함해 5~6명 정도. 정말 시골 간이역이다. 열차가 많이 서지 않을 법도 하다. 라즈돌노예 역에서 할 것은 없다. 다만, 이 간이역에서 자신이 어디로 갈 지도 모른 채 열차에 실렸을 것을 생각하면, 막막한 것을 넘어 자신의 생존을 걱정해야 했을 터. 실제 수기에는.. #10. 우수리스크(2) - 연해주에 깃든 한인의 흔적 ② 앞 글에 이어 쓰는 글. 날씨가 좋지 않아 우수리스크에 머문 첫 날에는 숙소에서 사진이나 정리, 하바롭스크로 이동할 날이 되어서야 날이 갰다. 하바롭스크로 가는 기차가 늦게 있어 우수리스크에 있는 흔적들을 마저 둘러보기로 결정. 최재형 선생 고택. 최재형 선생 생가라는 표현을 쓰는 글을 인터넷에서 몇 봤는데, 생가가 아니라 고택이다. 우리가 한국사를 배웠음에도 '최재형'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최재형 선생은 노령(러시아) 지역에서 한인사회의 구심점으로 활약하던 인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시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되었던 인물로, 1920년 4월 참변기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이다 피살되었다. 이 분의 중요한 활약이라면, 안중근 장군의 자금책을 자처하신 것. 즉, 안중근 장군이 일으킨 하얼빈 의.. #9. 우수리스크 (1) - 연해주에 깃든 한인의 흔적 ① 한인의 연해주 진출은 19C 중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강제합병 이후에는 소위 노령지역으로 불리며 항일운동의 또 다른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 지역의 한인을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뒤 연해주 지역에서는 점차 한인의 색이 옅어졌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했음에도 소련 해체 이후 원래의 터를 찾아 돌아온 고려인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연해주 지역 한인의 흔적이 다시 발굴, 유지될 수 있었다. 최근,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인들의 흔적을 찾아 기억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우수리스크를 찾는 목적은 바로 이 흔적을 돌아보는 일일 터. 주로 고려인 문화센터, 4월참변 추모비, 이상설 유허비, 최재형 선생 고택을 많이 다녀가는 것 같다..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