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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유람기/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19. 8. 2 ~ '20.1.28)

#9. 우수리스크 (1) - 연해주에 깃든 한인의 흔적 ①

한인의 연해주 진출은 19C 중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강제합병 이후에는 소위 노령지역으로 불리며 항일운동의 또 다른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 지역의 한인을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뒤 연해주 지역에서는 점차 한인의 색이 옅어졌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했음에도 소련 해체 이후 원래의 터를 찾아 돌아온 고려인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연해주 지역 한인의 흔적이 다시 발굴, 유지될 수 있었다.

 

최근,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인들의 흔적을 찾아 기억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우수리스크를 찾는 목적은 바로 이 흔적을 돌아보는 일일 터.

 

주로 고려인 문화센터, 4월참변 추모비, 이상설 유허비, 최재형 선생 고택을 많이 다녀가는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우수리스크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비가 주구장창 내렸다는 것.

 

그래서 쉬는 셈 하루 제끼기로 하고, 그 다음날 하바롭스크로 가기 전에 날씨가 갠 덕에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고려인문화센터. 여기에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비, 안중근 장군 기념비, 의암 유인석 기념비 등이 있다.

 

내부 사진은 별도로 찍지 않았지만, 고려인문화센터에서는 한인 이주사 및 강제이주 후 고려인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고려인이라고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이들을 까레이스끼(Корейский)라 부른다고 알고 있다.

 

전혀 아니다. 까레이스끼는 까레야(Корея)의 형용사형으로, '한국의'라는 뜻이고,

고려인은 까료-사람(Корё-сарам)이라 칭한다. 말 그대로 한국-사람이라는 뜻. 'сарам'은 한국어의 '사람'을 음만 따온 것.

 

우수리스크 교외의 4월 참변 추모비. 최재형 선생도 4월 참변이 일어난 시기 일제에 의해 피살됐다.

 

우수리스크에 도착한 그 다음날, 비가 엄청나게 내렸음에도 4월 참변 추모비는 따로 다녀오기로 했다.

(다음날 찾아갈 라즈돌노예 역의 기차시간 때문에 여기는 뺄 수가 없었다.)

 

4월 참변은 1920년 4월, 일제에 의해 벌어진 한인 학살 사건으로,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1920년 3월, 니콜라스크 지역(現 우수리스크)에서 적군에 의해 시베리아 내 일본인 거류민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다.

그런데 일본군은 보복의 화살을 한인들에게 돌렸고, 1920년 4월 ~ 5월 사이 한인 100여 명을 살해 및 체포했다.

이 시기 최재형 선생 등의 한인 지도자는 상당수 피살되었다.

 

역사의 현장에 장대비까지 내리니, 그 날의 분위기가 어떠했을까 짐작되는 것은 기분 탓인가 싶었다.

 

보통 4월 참변 추모비가 비교적 교외에 있어 대개 택시로 방문하는데,

4월 참변 추모비까지 우수리스크 역에서 버스로 바로 갈 수 있다.

 

우수리스크 역 앞 광장의 버스정류장에서 2번 버스를 타면 되며, "Ленинградская(레닌그라드스까야, шикола No.24)"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우수리스크 역에서 정확히 11정거장 이동하면 된다.

 

우수리스크 역 앞 로터리. 버스 정류장으로 오면 이런 광경이 보일 것이다.

 

최재형 고택, 이상설 유허비 이야기는 다음 페이지에서.

 

2019. 8. 20

Written by Kon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