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 이어 쓰는 글.
날씨가 좋지 않아 우수리스크에 머문 첫 날에는 숙소에서 사진이나 정리, 하바롭스크로 이동할 날이 되어서야 날이 갰다.
하바롭스크로 가는 기차가 늦게 있어 우수리스크에 있는 흔적들을 마저 둘러보기로 결정.
최재형 선생 고택. 최재형 선생 생가라는 표현을 쓰는 글을 인터넷에서 몇 봤는데, 생가가 아니라 고택이다.
우리가 한국사를 배웠음에도 '최재형'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최재형 선생은 노령(러시아) 지역에서 한인사회의 구심점으로 활약하던 인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시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되었던 인물로, 1920년 4월 참변기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이다 피살되었다.
이 분의 중요한 활약이라면, 안중근 장군의 자금책을 자처하신 것.
즉, 안중근 장군이 일으킨 하얼빈 의거의 배후에 서셨던 분이다.
복원한 고택 안에 전시관이 있다. 독립기념관에서 전시관을 구성, 국가보훈처에서 지원, 수원대 박 환 선생님께서 감수.
최근에 복원한 모습이다.
찾아왔을 때 최재형 선생 흉상과 기념비를 세우는 작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 하바롭스크에 도착한 뒤 뉴스를 보니 최재형 선생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다고.
최재형 선생 고택 역시 우수리스크 역에서 2번 버스를 타면 올 수 있다.
역에서 7정거장 지나서 'Гортеатр(고르뗴아뜨르)'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최재형 생가를 둘러본 뒤 이상설 유허비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상설 선생은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던 3명(이상설, 이 준, 이위종) 중 1명으로, 대한제국의 국권 피탈 후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1917년 니콜리스크(現 우수리스크)에서 병사할 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 한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고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 때문일까. 이상설 선생의 묘는 없고 유허비만 있을 뿐이었다.
이상설 유허비는 버스로 다녀올 수 없다. 오로지 택시 혹은 투어 프로그램을 통한 버스만이 답.
나는 별도의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지 않아 우수리스크 시내에서 택시를 잡고, 추가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왕복했다.
지도를 보여줘도 기사가 모를 수 있으니, 길을 가다 보면 버스가 유달리 많은 곳이 있다. 그 곳으로 가면 95% 이상 맞다.
마침 다른 곳에서 단체로 돌아보고 가는 길인데, 혼자 왔다 하니 놀라는 눈치. 사실 혼자 오기 쉽지는 않은 곳이긴 하다.
우수리스크는 예로부터 '쌍성자(雙城子)"라 불리기도 했으며, 발해사를 훑어보면 '솔빈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 앞에는 솔빈강이 흐르고 있다.
다행히 날씨가 많이 도와주어 모두 돌아볼 수 있었다. 저녁에 시간이 좀 있어 라즈돌노예 역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라즈돌노예 역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2019. 8. 25
Written by Ko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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