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이 극에 도달했다.
놀고 먹는 데 미쳐서 정리하길 미뤄온 지 어느덧 두 달째, 내일 당장 스페인을 뜨는데...
그래도 간간이 정리해야 나중에 후폭풍이 밀려오지 않겠지...?
발렌시아를 떠나는 11월 20일은 꽤 흐렸다. 게다가 감기가 찾아와 극악의 컨디션을 갖고 떠났다.
발렌시아에서 묵었던 숙소가 환기가 안 되어 공기가 답답했을 뿐더러,
환기하려고 낮에 문을 열어두면 계속 닫아 환기가 될 턱이 있나. 그러니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다.
발렌시아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버스를 타러 가기로 했다.
매주 목요일 정오면 콘스티투시온 광장 한 켠에서는 트리부날 데 라스 아구아스(Tribunal de las Aguas),
소위 '물 재판'이 열리는데, 이 물 재판은 예전부터 있어온 농부들 간의 관개수로 분쟁에 관한 재판이다.
지금은 목요일 정오에 잠깐 열렸다 끝나는, 나름 보기 어려운 광경인데, 내가 갔을 때도 순식간에 끝났다.
(그래서 사진이 없다... ㅠ) 재미있는 점이라면, 재판의 모든 과정은 카탈루냐어로 진행된다.
여튼, 숙소 체크아웃을 마치고 바로 터미널로 갔다. 무르시아까지는 3시간 넘게 걸리니, 일찍 이동하기로.
발렌시아 버스터미널은 발렌시아 역과 다른 곳에 있으므로 헷갈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일정이 맞았다면 라 리가(LaLiga) 경기도 봤겠지만,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 발렌시아 경기는 없었던지라 다음을 기약키로 했다.
이 때는 몰랐다. 내가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라 리가 경기를 한 번도 못 볼 줄...
터미널에서 출발하니 비가 내렸다. 그렇잖아도 우산 꺼내기 참 귀찮고,
비 오면 큰 배낭 매고 다니는 것도 일인데, 비가 오면 야속하면서도 참 싫었다.
그래도 비 그쳐달라고 빌었던 게 먹혔을까. 무르시아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숙소가 버스터미널에서 좀 떨어져 있고, 바로 가는 버스도 없어 좀 걸었다.
비가 올 때의 야속함은 어느 새 눈 녹 듯 사라진 채, 입을 벌리고 탄성을 내며 서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갖는 느낌 중에, 힘듦에 대한 보상을 받는 순간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때였을 게다.
무사히 무르시아에 도착!
2019. 1. 27
Written by Ko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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