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겨울이 있었다. 아니, 한국인의 눈에는 전혀 겨울같지 않았다.
눈이 내리지 않고, 얼음도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몸에는, 눈에는 겨울이었다.
하긴, 여름에는 태양이 뜨겁게 작렬한다고 하니, 이것도 춥긴 추울 게다.
그럼에도 발렌시아의 바닷가는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그것과는 달랐다.
휑한 바닷가에 갈매기 몇 마리가 오갈 뿐이었고 사람 몇 명만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11월 중순이어서였을까.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문 연 곳이 없지는 않았지만,
세게 말하면 썰렁하기 그지없을 정도였을까.
다행이란 생각도 드는 게, 여름이었다면 사람으로 가득했을 이 곳을
조용히, 내 나름대로 천천히 거닐 수 있어 좋긴 했다.
내가 스노클링, 윈드서핑 등등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지라 걷기만 하는 게 더 나았던 것 같다.
춥지 않아서 좋았던 것도 있고.
여기 발렌시아도 아니나다를까, 시에스타 시간은 정말 칼같다.
한국과는 다른 그들의 문화에 구시렁대면서도 이해는 되는 것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일하면 금방 지치기 마련인지라 가장 더운 대낮에는 차라리 쉬는 게 낫다.
군대에 있을 때도 혹서기 일과라 해서 조금 일찍 시작하고 낮에는 쉬었다가 오후에 마저 소화하지 않는가.
어쩌면 시에스타는, 일부러 쉬려고 만든 풍습이 아닌, 살기 위해 만든 풍습일지도 모른다.
무리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으니까.
2020. 1. 17
Written by Ko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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