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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유람기/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19. 8. 2 ~ '20.1.28)

#88. 발렌시아(1) - 철 지난 바닷가

여기도 겨울이 있었다. 아니, 한국인의 눈에는 전혀 겨울같지 않았다.

눈이 내리지 않고, 얼음도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몸에는, 눈에는 겨울이었다.

하긴, 여름에는 태양이 뜨겁게 작렬한다고 하니, 이것도 춥긴 추울 게다.

그럼에도 발렌시아의 바닷가는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그것과는 달랐다.

휑한 바닷가에 갈매기 몇 마리가 오갈 뿐이었고 사람 몇 명만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발렌시아도 대중교통이 잘 뚫려 있어 바닷가 근처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한산한 바닷가 옆 거리. 여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러 오겠지?

11월 중순이어서였을까.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문 연 곳이 없지는 않았지만,

세게 말하면 썰렁하기 그지없을 정도였을까.

 

누군지, 무슨 동물인지 모를 발자국. 발자국은 금세 파도에 쓸려 없어지고...
하늘이 맑았다, 흐렸다. 그럼에도 구름은 예쁘다.
그럼에도 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길. 낚시하는 사람도 보이고 산책삼아 나온 사람도 보이고.

다행이란 생각도 드는 게, 여름이었다면 사람으로 가득했을 이 곳을

조용히, 내 나름대로 천천히 거닐 수 있어 좋긴 했다.

내가 스노클링, 윈드서핑 등등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지라 걷기만 하는 게 더 나았던 것 같다.

춥지 않아서 좋았던 것도 있고.

 

바닷가에서 돌아오며. 마침 시에스타 시간대라 조용했다.

여기 발렌시아도 아니나다를까, 시에스타 시간은 정말 칼같다.

한국과는 다른 그들의 문화에 구시렁대면서도 이해는 되는 것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일하면 금방 지치기 마련인지라 가장 더운 대낮에는 차라리 쉬는 게 낫다.

군대에 있을 때도 혹서기 일과라 해서 조금 일찍 시작하고 낮에는 쉬었다가 오후에 마저 소화하지 않는가.

어쩌면 시에스타는, 일부러 쉬려고 만든 풍습이 아닌, 살기 위해 만든 풍습일지도 모른다.

무리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으니까.

 

2020. 1. 17

Written by Kon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