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에서 이틀 쉬고 아침에 울란우데로 가기로 했다. 너무 짧게 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치타 역으로 향했다.
미처 거주등록증을 받아온다는 걸 깜빡했다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전 도시인 블라고베셴스크에서 등록한 뒤로 근무일 기준 7일이 지나지 않아 다음 도시에서 등록해도 충분했다.
헌데 열차를 타고 나서 알았지만... 먹을 것을 산 봉투를 벤치에 놔두고 와버렸다. (대체 왜 이런 실수를 했단 말인가...)
점심까지 제대로 서는 역이 없어 차장실에서 라면과 감자스프를 사서 대충 끼니를 때웠다.
그래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처음으로 열차에서 한국인을 만나 이야기도 했던 열차였다.
심지어 그 중에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 갈 때까지 서로 썰풀이를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갔다.
나보다 나이가 댓 살 어린 여대생이었는데, 혼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간다고 하니 참 대단해보였다.
난 대학 2학년 때 갈피를 못 잡아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였던 걸 생각하면, 그저 대단할 따름...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왜 늙은 것 같지? 난 아직 젊은데... ㅠ)
지금은 카잔에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정말 좋은 도시라고 한다. 카잔에는 9월 중하순에 당도할 예정인데,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 기대된다.
열차 이야기로 넘어가서.
099Э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 → 모스크바 횡단 열차 중 하나다. 그래서 한국인들도 종종 보이는 것 같다.
통상 블라디보스토크 - 모스크바 간 횡단열차는 001M / 002Щ와 099Э / 100Щ의 두 짝으로 이뤄진다.
특이점이 있다면, 100Щ는 특정 요일, 특정 일자에 일부 객차가 우수리스크에서 분기한다. 이 열차는...
북한의 두만강역을 거쳐 평양역까지 가는, 전 세계 최장거리 노선의 열차다.
(미쳤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이 열차 타고 평양 가진 않겠지?)
이 이야기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고 했을 때) 이론상 북한 사람과 같은 열차에 탈 수도 있다는 이야기.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아래는 여담.
통상 열차 번호가 001에 가까워질수록 열차 시설이 좋다더라 하는데,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확히는 복불복이다. 내가 탄 열차를 토대로 살펴보면 다음의 반례가 있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치타로 가는 391Ч 열차는 플라쯔까르따(3등칸)였음에도 에어컨과 콘센트가 구비된 신형 객차였다.
이르쿠츠크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로 가는 069Ч 열차는 쿠페(2등칸)였음에도 에어컨과 콘센트가 없던 구형 객차였다.
(물론 쿠페 중에서도 객차 간 우열이 있고 중간에 만난 분은 플라쯔까르따 객차에 계셨는데 신식 객차였다.)
그러므로, 열차 번호가 낮을수록 꼭 좋은 건 아니다. 객차 등급과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복불복일 수 있다는 것.
다만, 001M 열차는 'Россия'호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달고 운행하는 만큼 시설이 더 좋고 요금도 비싸다.
이런 넘사벽 열차를 제외하면 열번의 법칙은 늘 맞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른 열차보다 짧은(?) 8시간 반 정도를 달려 울란우데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니 세기말 분위기다.
울란우데 역에 도착하니 공사판에 난리도 아니었다. 부랴티야 공화국으로 넘어오니 뭔가 몽골의 분위기도 난다.
실제로 몽골인들도 많이 거주하거니와 울란우데에는 몽골 총영사관도 있어 비자를 받아서 몽골로 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국제열차도 있다지만 몽골로 향하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버스를 탄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출입국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자, 점점 바이칼로 한 걸음씩 더 가고 있다. 여기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겪을 줄은 모른 채.
열번 | 일자 | 발(發) | 착(着) | 운임 | 비고 |
099Э | '19. 8. 20(월) | 09:24 | 18:48 | 1638.8루블 |
3달 전 예매, 플라쯔까르따 |
2019. 8. 31
Written by Ko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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