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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유람기/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19. 8. 2 ~ '20.1.28)

#71. 상트페테르부르크(2) - 그림 보느라 정신 없는 에르미타주

피의 성당을 나와, 잠시 쉬다 에르미타주로 갔다.

잠시 들른 커피숍에서 종이컵에 내 얼굴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길래, 신기해서 담아봤다.

여기는 'Sokol Coffee'. 알아보고 간 건 아니고, 날씨가 너무 춥길래 따뜻한 카페모카 한 모금 마시러 들어갔다 얻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생각보다 닮아서 깜짝 놀랐다.

커피로 몸을 좀 녹이고 에르미타주로 걸어갔다. 곰곰이 생각하길,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만, '세계 3대 XXX'라는 타이틀을 참 좋아하는 동네가 있긴 있다. 무슨 의미인진 모르겠지만.

세계 3대 박물관이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에르미타주 아니면 국립고궁박물원이니 뭐니 그게 그리 중요할까.

물론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타지의 유물을 쓸어온 동네가 좀 많아서 껄끄럽긴 하다.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이 왜 있을까 싶은 것처럼.

 

여튼, 에르미타주 역시 유물의 수가 방대해 하루에 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에르미타주는 원래 프랑스어 단어인 'Hermitage'에서 온 말로, 비밀스러운 처소를 뜻한다.

원래 옐리자베타 여제 집권기에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궁전으로 지어진 것을,

예카테리나 2세 집권 이후 미술품 수집 컬렉션을 전시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

다만, 그 범위는 어마무시해서 러시아 미술품부터 현대 작가인 마티스, 피카소의 작품까지 섭렵하고 있다.

제대로 보려면 한 번 와서는 다 볼 수 없다. 각 전시관도 꽤 넓고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야 될 만큼 소장품 수가 방대하다.

 

에르미타주 앞의 알렉산드르 원기둥. 알렉산드르 원주라고 하는데 그냥 원기둥이라고 하면 된다.

다행히 에르미타주는 수, 금요일에 야간개장을 하며, 매월 3번째 목요일에는 무료로 개방한다.

원래 무료개방일에 가려고 했는데, 딱 봐도 사람이 엄청 많을 것 같아서 그냥 사람 덜 많을 때 돈 내고 가자는 생각으로 목요일에는 가지 않았다. 1일 기준 입장료는 700루블이고 오디오가이드는 500루블이다.

 

에르미타주 전경. 중앙으로 들어가면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예매한 경우에는 입구가 좀 다르다고 하니, 홈페이지에서 알아보고 가는 게 좋다.

그렇지 않고 바로 입장권을 구매할 경우 카드로 예매하면 자동발매기에서 더 빨리 예매 가능하다.

단, ISIC(국제학생증)를 사용해 입장권을 구매하려면 반드시 창구로 가야 한다!

여튼, 입장권 구매 후 여느 러시아 박물관이 그렇듯 가방과 외투를 맡기고 들어가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다.

이 때, 가이드 대여비로 500루블을 납부하고 2000루블 혹은 자신의 여권을 담보로 맡겨야 한다.

다행히 한국어 가이드가 있는데, 땅콩에서 가이드 및 안내자료 제작을 지원했는지, 한국어 안내도에 땅콩의 마크가 뙇.

 

러시아의 박물관에서 한국어라니, 너무도 생경하다.

가이드 녹음은 김성주 아나운서와 손 숙 연극배우께서 해주셨다고 한다.

이전에 피의 성당에서 들었던 가이드와 달리 아주 자연스럽다.

단, 모든 작품에 대해서 가이드가 있는 것은 아니니, 번호를 확인하고 그에 맞추어 청취하면 됨.

 

여기서 반갑게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핀란드에 왔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잠시 온 한국 학생들을 만나서

같이 다니게 됐다. 갑작스런 동행 제안이었음에도 흔쾌히 동행을 허락해주어 너무 감사할 따름.

(에르미타주 관람을 끝내고 같이 저녁식사까지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방 안이 황금색 장식으로 가득하다.
궁전의 방 일부.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방이 하나의 전시장이자 전시품 그 자체다.

위 사진들은 겨울궁전 본관의 방들이다. 원체 궁전으로 지어졌기에 방 하나하나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황금색은 말 할 필요도 없고 장식들이 현란하다.

에르미타주에는 렘브란트, 루벤스부터 시작해서 라파엘로의 작품도 있고,

신관으로 건너가면 세잔, 고갱, 마네, 모네 등의 작품도 있다. 그야말로 미술품 총집합.

 

에르미타주에 있는 라파엘로의 유일한 작품인 '몸을 웅크리고 있는 소년'.
렘브란트의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지만, 천사는 아브라함이 오른손에 쥐고있던 칼을 떨구고 있다.

이는 진짜 아들을 제물로 바칠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순종만을 원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

예수는 인간에게 가학적인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 예전에는 참모본부로 쓰인 건물이다.

수많은 작품을 뒤로하고 다른 건물로 넘어왔다. 여기서도 본관에 들어갈 때와 똑같이 외투와 가방을 맡겨야 한다.

이거 생각보다 많이 번거롭다...

여기에는 19세기 이후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세잔, 고갱뿐만 아니라 칸딘스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클로드 모네의 '정원의 여인'. 사실적 표현에서 벗어나 점묘로 표현한 기법이 돋보인다.
'폴 세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물화. 교과서에서도 많이 본 구도 아닐까?
폴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 연작 중. 배색이 주는 느낌이 강렬하다.
칸딘스키의 추상화, '풍경'. 산을 그린 것은 알 것 같은데,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관람 시간이 오후 9시까지였음에도, 에르미타주 전체를 돌아볼 수 없었다.

너무 넓고, 작품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한 번 더 오려고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아 하루 쉬는 바람에 내년에 페트로자보츠크에 가기 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면서 한 번 더 와야겠다.

전시품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보고 나온다는 말이 빈 말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공부하고 가도 너무 많아서 내가 아는 그 작품이 맞나 헷갈릴 때도 있다...

정말로, 예술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2019. 11. 12

Written by Kon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