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서 마음먹기를, 어차피 인생은 길기 때문에 여기 한 번 더 오리라 마음먹고
느긋하게 돌아다니기로 했다. 무리해서 몸이 퍼지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않을까?
다만, 가을장마라는 걸 너무 늦게 안 탓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내내 햇빛을 제대로 본 날이 하루이틀 뿐이었다.
심지어 모스크바에서 해를 본 횟수를 합쳐도 그 정도. 그러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를부르크를 갈 거면 여름에 갑시다.
우산은 반드시 갖고 나와야 할 만큼 비가 수시로 내리고, 안개비는 기본인 날도 많았다.
비가 내려 운치가 있어서 좋았잖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은 게,
해 지는 시간이 그렇잖아도 빨라지고 있는데 더 빠른 느낌이었다.
일몰 시간이 5시 40분이라면 5시 조금 넘으면 벌써 어두운 느낌.
게다가 하계에서 동계로 넘어가는 시기라 주요 건축물, 문화재는 보수에 들어간다. 피의 성당도 보수중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가볼 순 없었으니, 피의 성당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입장료는 300루블인데, 오디오가이드까지 포함하면 550루블. 한국어 가이드가 있긴 하다.
자세한 설명은 가이드로 들으면 되니, 생략. 그런데 오디오 가이드 목소리가 상당히 졸립다.
나중에 알아보니, 피의 성당과 성 이삭 대성당의 오디오 가이드 목소리가 같은 걸로 봐서는 같이 녹음했지 싶다.
사실 피의 성당은 별칭이고, '그리스도 부활 성당(Собор Воскресения Христова)'이 정식 명칭인데,
'피의 성당'이라는 이름이 주는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피의 성당이라고 하면 더 잘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피의 성당이라는 이름이 연관이 없지 않은 것이, 알렉산드르 2세가 피를 흘린 자리에
아들인 알렉산드르 3세가 아버지를 추모하여 세운 성당이기 때문에 피의 성당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
(다만, 알렉산드르 2세는 궁궐에서 죽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 죽기 직전에 궁궐로 옮겨졌다.)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2세가 무정부주의(혹은 사회주의, 공화주의)자 세력인 인민의 의지당 소속 과격분자로부터
테러를 당해 사망한 뒤, 피의 성당 건립과 함께 무자비한 정적 숙청이 이뤄졌다고 하니,
어떻게 보든 피의 성당이라는 이명이 붙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다행히 사진 촬영이 가능해 몇 가지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피의 성당 내부에 있는 벽화는 전부 모자이크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일일이 조그마한 타일을 붙여 하나의 그림으로 만든 것이니, 만드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듯.
늘 느끼는 것이지만,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찾으면서 성당에서 경건함을 많이 느꼈다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니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미사를 집전하는 때가 아니라면 경건함을 느끼기는 좀 어려울 듯 싶다.
이건 다른 성당도 예외는 없을 것 같다. 성당을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린다.
2019. 11. 12
Written by Ko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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