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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유람기/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19. 8. 2 ~ '20.1.28)

#45. 볼고그라드(1) - 스탈린그라드 전투 수훈의 영웅 도시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 도시 중에는 '영웅 도시(Герой-город)'가 있다.

영웅 도시는 대조국전쟁(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 기간) 당시 수훈했거나 특기할 공훈이 있는 도시에 내린 칭호다.

이 중 일부 도시는 이를 영광으로 생각해 시 문장이나 시기(市旗)에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새겨 넣기도 했다.

 

볼고그라드 문장. 소련영웅 표시가 인상적이다.

볼고그라드 시 문장의 윗 부분에 영웅 도시임을 나타내는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그려넣었다.

볼고그라드는 바로 독소전쟁의 전환기를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현장이었다.

소련군과 추축군 도합 200여 만 명이 죽어나갔을 만큼 양측 모두 많은 피를 흘렸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현장,

소련 입장에서는 독소전쟁의 전환기를 마련하고 추축국의 공세를 막아내고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던 현장.

 

실제로 볼고그라드는 소련 치하 초기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도시인 만큼 볼가 강을 이용한 수운, 철도 교통의 환적지로 기능했으며 한편으론 중공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스탈린 입장에서도 이 곳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성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독일을 막지 못하면 당장 일본이라는, 또 다른 추축국 세력을 함께 상대하면서 양면전쟁으로 흘러가 전비 소모가 가속화될 것이 뻔했기 때문. 그래서 악명 높은 제 227호 명령까지 내려 후퇴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었을까.

 

제 227호 명령은 1942년 7월 28일 스탈린이 발령한 명령으로, "Ни шагу наза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라는, 

짧고도 명료한 명령이었다. 즉, 후퇴하면 죽여버린단 이야기. 이 명령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일어났으니, 곳곳에서 밀려드는 독일군을 상대하려는 소련군은 후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죽어갔던 것.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인지, 다른 곳보다도 전후 현충 시설이 더욱 돋보이는 도시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흘린 피가 다른 전쟁에서 흘린 피 못지 않았으니, 이 전투의 기억이 소련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볼고그라드의 어머니 조국상. 얀덱스 지도에는 'Родина-Мать завёт!(The motherland calls!)'라 나온다.

어머니 조국상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25주년을 맞은 1967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의 격전지였던 이 곳,

마마이의 언덕에 참전용사 기념관을 건설하며 소련 인민의 조국 수호 의지를 피력할 건축물을 세우고자 결정,

그에 따라 나온 결과물이다.

 

하필 어머니 조국상을 찾아갔을 때 2020년 4월까지 보수 공사 중이라 철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머니 조국상 인근에 군부대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어머니 조국상을 비롯한 현충시설을 그 부대에서 관리하는 것 같다.

볼고그라드는 다른 것보다도 이 조국상이 메인인데, 아쉬울 따름. 그래도 어머니 조국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 조국상 인근의 볼고그라드 군사 묘지. 전방의 벽에 참전용사 명단이 새겨져 있다.

다음은 어머니 조국상 아래에 위치한 볼고그라드의 참전용사 추모관.

첫날 갔을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위병 교대 시간에 맞춰 도착한 덕에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참전용사 기념관 입구. 소련 인민의 모습을 벽에 새긴 것이 인상적이다. 그 와중에 레닌 얼굴이 꽤 크다.
위병 2명이 꺼지지 않는 횃불을 항상 지키고 있다. 뒤의 벽에 보이는 것은 참전자 명단.
당시 1시 정각이 되니 위병 교대가 있었다. 1시간 간격인지 2시간 간격인지 알 수는 없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형상화한 조각상. 기념관 왼쪽에 있다.

말 그대로, '전쟁으로 인해 전쟁의 피해자가 없는 집안이 없었다.'는 말이 사실일 만큼, 소련이 마주한 피해는 엄청났다.

스탈린조차도 자신의 아들을 대조국전쟁에 참전시켰고, 그 아들은 독일군의 총탄에 사살됐다.

국가의 최고지도자조차도 전쟁의 물결을 쉽사리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 대조국전쟁은 지금의 러시아뿐만 아니라

구 소련 구성국 국민들의 삶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형상화한 벽화.

기념관 밖에서는 독소전쟁 당시의 라디오 방송을 이따금씩 틀어주고 있었다.

이 당시 방송을 맡았던 아나운서는 소련의 아나운서였던 유리 레비탄(Юрий Борисович Левитан, 1914 ~ 1983)이었다.

나치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실행해 소련을 침공했을 때도, 소련이 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승리의 날에도, 어김 없이 유리 레비탄의 목소리로 그 내용이 발표되었다. 여담으로, 볼고그라드 시내에는 유리 레비탄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예카테린부르크 시내에서 찾은 유리 레비탄 동판. 그야말로 '소련의 목소리'라 불릴 만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2019. 9. 30

Written by Kon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