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10번째 이동 - 페트로파블롭스크 → 예카테린부르크 (303Ц 열차)
또 한 번의 출입국이 기다린다.
이번 열차는 새벽열차라 눈도 못 붙이고 숙소를 나왔다. 숙소를 나오니 새벽 3시 반.
이 새벽에 설마 얀덱스 택시가 잡힐까 반신반의하면서 호출했는데 거짓말처럼 잡혔다. 누군가 나를 돕는 것이 틀림 없다.
이 때 참으로 고마웠던 것이, 내가 갖고 있던 돈이 600텡게였다.
택시비로 420텡게가 나왔는데 거스름돈을 거슬러줄 수가 없어 택시기사가 그냥 400텡게만 받겠다고 한 것.
생각지 않은 호의였던지라 연신 미안하고 고맙다 하며 역으로 들어갔다.
카자흐스탄 역시 러시아처럼 역사를 드나들 때 짐 검색을 해야 하는데... 새벽이라서 검색대를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열차가 들어왔다. 이번 열차는 러시아 열차가 아닌, 카자흐스탄의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탄 칸은 키르기즈스탄의 비쉬케크에서 오는 열차였고 카자흐스탄 열차는 앞쪽에 연결되었다.)
이 사진이 제일 충격이었다. 러시아 객차는 내부 시스템을 이용해서 물을 가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키르기즈스탄 열차는 대놓고 불을 때서 물을 끓이고 있었다. 이러다 화재라도 나면 큰일나는 것 아닌가.
무사히 예카테린부르크까지 도착했으니 아무래도 좋게 됐지만. 상상 그 이상의 광경이었다.
여튼, 아무래도 국경 전의 가장 큰 역이어서 그런지 대기 시간도 1시간 40분 가량으로 꽤나 길었고 세관원이
마약탐지견을 데리고 열차 곳곳을 수색했다. 국경을 넘어갈 때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안 되니 당연한 일이다.
카자흐스탄 출국심사는 별 일 없이 끝났다. 다만 심사관이 비자 유무를 물어볼 수 있는데,
한국인은 관광 목적으로 러시아 입국 시 무비자임을 알려주면 심사가 수월하다. 이걸 어떻게 말할까?
괜찮다. 우리에게는 번역기가 있다. 단, 한국어 → 러시아어로 하지 말고 영어 → 러시아어로 쓸 것!
(구글 기준으로 영어 → 러시아어는 직역이라 조금 더 나으나, 한국어는 이중번역이라 부자연스럽다.)
문제는 러시아 입국심사다. 통상 러시아에 항공편으로 입국할 경우에는 출입국카드를 수기로 쓸 일은 서명 할 때 뿐이다.
그러나 육로, 해로로 입국할 경우에는 이 출입국카드를 본인이 수기로 써야 한다.
무사히 러시아 입국을 끝내고 밤을 샌 후유증이 온 것일까.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할 때까지 끊임없이 잤다.
중간에 휴대전화 요금 충전을 위해 내렸던 것을 제외하면 밥도 안 먹고 잤다.
도착한 것까진 좋았는데, 열차에서 내리면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열차 승무원(아저씨뻘 되는 사람이었다.)이 표를 주지 않고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러시아에서 열차를 탈 때 열차표를 돌려받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것은 거주등록제도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출입국 시 심사관이 거주등록증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거주등록은 엄연히 러시아 연방 법령에 명시된 의무다.)
러시아 첫 입국 시 기본적으로 72시간 이내에 거주등록을 해야 한다. (출국 후 재입국 시도 마찬가지.)
헌데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Q. A군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입국해 바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 이르쿠츠크로 갔다. 그렇다면 이동 간의 거주등록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A. 이 때는 열차표가 거주등록을 대신한다. 해당 기간의 열차표가 거주등록에 해당하지 않는 기간의 이동을 증명하므로
열차표는 러시아 출국 시까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러시아 철도 탑승 시 하차 1시간 전에는 차장이 직접 객실 내를 돌면서 열차표를 반드시 돌려준다.
(어떤 경우에는 탑승 시 받은 침구류 반납과 함께 돌려주기도 함.)
그런데 이 키르기즈 승무원은 갑자기 뇌물을 요구하면서 표를 가져가려 하길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된단 눈치를 주었고 마침 다른 승무원이 빨리 나오라는 틈에 티켓을 도로 받아 나왔다.
다른 승무원이 아니었으면 아마 뇌물을 주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위기를 잘 넘겼다.
그렇게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열번 | 일자 | 발(發) | 착(着) | 운임 | 비고 |
303Ц | '19. 9. 12(목) | 05:42 | 16:59 | 1961루블 |
1달 전 예매, 플라쯔까르따 |
2019. 9. 22
Written by Konhistory